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제 회의 (문단 편집) == 여담 == * 1947년 미군 조사단에 의해서 독일 외무부에서 발견된 마르틴 루터의 반제 회의록 사본이 현존하는 유일한 회의록이다. * 반제 회의의 내용을 기록한 문서를 보면 '절멸'과 같은 직접적인 표현 대신에 '최종해결책'과 같은 두루뭉술하기 짝이 없는 표현들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는 자신들의 범죄를 최대한 감추기 위한 나치의 노력이었다. 반제 회의의 준비를 담당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전후 재판에서 실제 회의에서는 살해, 절멸과 같은 직접적인 표현들이 언급되었지만 문서상에서는 이러한 표현들을 일부러 모호한 표현으로 포장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 [[아우슈비츠]]나 트레블링카와 같은 절멸 수용소를 이용하는 것 외에 동유럽의 식량 보급을 끊어 버려 서서히 유대인과 슬라브족을 아사시키는 방법도 이용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약 420만 명의 [[소련인]]들이 이로 인해 아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전쟁 포로였다. * 반제 회의가 열렸던 별장은 나치 초기에 한 기업가에게 강제로 빼앗은 것이며 문제의 기업가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횡령 혐의로 감옥에 갇혀 있었다가 전쟁이 끝난 거의 직후에 사망했다. 별장 건물 자체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어서 반제 회의를 다루는 역사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